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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가 가장 좋은 곳입니다. -풀꽃시인 나태주
2017-08-30 14:21:22   조회:276회


빈자리가 가장 좋은 곳입니다


                             _풀꽃시인 나태주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로 축축한 바람이 불었다. 나를 따라서 풀꽃문학관까지 온 토끼모양의 흰 구름은 땀을 뻘뻘 흘렸다. 손수건도 흥건히 젖었다. 밤새 비를 맞고도 방긋거리는 꽃망울을 그곳에서 만났다. 어느 순간 시인은 화사한 꽃그늘에서 해맑은 얼굴을 비추었다.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신 분들이 많다. 풀꽃문학관 식구들은 은은한 풀꽃을 닮았다. 선생님은 찻잔의 물을 끓이면서 가끔 뒤뜰의 꽃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이야기꽃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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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풀꽃문학관

이기인 : 올해는 지난 8년간 이끌었던 공주문화원장 이임식이 있었습니다. 교직에서 물러나신 이후로 새로운 직함으로 활동하신 공주문화원장으로서의 소회가 있을 듯 합니다. 그동안 문화현장에서 보고 느끼신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혹시 직함을 내려놓으시면서 서운한 마음은 없었는지요.

 

나태주 : 소회(所懷)라는 말은 얼핏 듣기에 소외(疏外)로 들립니다. 소회라는 말은 ‘먹은’ 마음일 것입니다. 일단 저는 8년을 못할 줄 알고 시작했는데 무사히 마쳤습니다. 8년을 이끌어온 일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은 교직생활 43년 3개월보다 더 길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로 의미가 큽니다. 사실 저는 공주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공주사람들하고 흔쾌히 일할 수 있는 직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보람과 고마움이 큽니다.
저는 이제까지 학교의 선생과 시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문화예술 행정가로서의 삶을 살아보게 돼서 새로운 경험을 얻었습니다. 행정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문화예술을 살려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종합해보면, 문화라는 것은 변화가 매우 느립니다. 또한 예술과 문화는 매우 자생적이고 독립적입니다. 간섭을 싫어합니다. 간섭하면 거부반응이 일어납니다. 문화는 같이 동화되고 어울리면서 조금 바꿀 때 따라옵니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인 입장이 돼버리면 절대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그동안에 배웠습니다. 너무 늦게 배웠지만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머리가 가슴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머리와 함께 동화되는 것입니다. 동화는 타인과의 동화, 이성과 감성의 동화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동화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지난 8년 동안 배웠습니다.

 

이기인 : 작년에 출간한 『꽃을 보듯 너를 본다』란 시집은 독자에게 인기가 엄청납니다. 출판계의 불황에서도 이렇듯 선생님의 시가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나태주 : 1년 반 만에 8만 5천부를 찍었습니다. 사실 주변에서도 시집의 인기를 궁금해 합니다. 이렇듯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풀꽃」을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는지. 「풀꽃」 이란 시가 이끄는 시의 힘이 큽니다. 사실 예전에는 집단적인 사고가 독자를 위로했습니다. 일테면 우파, 좌파성향의 이념, 소속감, 지연, 학연, 혈연 등 5가지의 요소가 작용했습니다. 혈연이 먼저 생기고 이후 지연, 학연, 직장이념, 이념의 이념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5가지의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나는 나의 이념만 갖고 삽니다. 이럴 때 나는 ‘너’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늘 너를 찾습니다. 나의 대척점에는 항상 이렇듯 너가 있습니다. 이때의 너는 나에게 맞서는 너가 아니라 나에게 좋은 너이고 그리운 너입니다. 여기서 저는 너를 ‘세상’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나의 시입니다.

 

이기인 : 「풀꽃」이란 시는 선생님을 널리 알려준 시입니다. 특히 서울 교보빌딩 <광화문글판>에 소개된 이후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시를 언제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글자 수로 24자밖에 안 되는 아주 짤막한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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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 <풀꽃>

나태주 : 「풀꽃」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사실 아주 소소한 얘기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애들이 그림 그릴 때 너무 빨리 함부로 그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오래 봐야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너네들도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이 시는 언어의 장력하고 관련이 많습니다. 우리의 전통시가는 시조인데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이 말은 시조의 초장을 줄인 것입니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이 부분은 중장을 줄인 거고요. “너도 그렇다” 이 부분은 종장을 줄였습니다. 이렇듯 시조의 형식이 이 시에 스며있습니다. 이 시엔 또 다른 언어장력이 작용합니다.

언어에는 상생력과 상극력이 있습니다. 밀고 당기는 힘이죠. 오늘의 현대시에는 상극력이 너무 많습니다. 시를 읽다보면 꺼끌꺼끌한 느낌이 듭니다. 상극력 때문입니다. 이런 느낌은 시조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가든 못하죠” 식의 짝이 맞는 느낌이 중요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이것은 3단이지만 짝이 맞습니다. 앞서 얘기했던 나와 너와의 관계입니다. 이렇듯 「풀꽃」이란 시에는 나와 너의 관계가 있습니다. 즉 상생력이 있습니다. 이런 언어의 짜임이 있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내용적으로도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은 보통 사소하고 작은 얘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옛날에는 집단, 이념, 편 가르기 등 큰 개념에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것이 깨졌습니다. 한 편이라는 소속감과 쾌감을 즐겼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는 작은 것을 주목합니다. 독자들도 비로소 개인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변화는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부처님의 유아독존, 기독교의 긍휼이 여기는 마음, 고독한 자아 등. 독자들의 관심이 진일보했습니다. 시다운 시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시는 제목이 본문에 없어야 합니다. 제목과 본문은 차이가 있으면서 붙여놓으면 관계가 밀접해야 합니다. 「풀꽃」도 그렇습니다. ‘풀꽃’이란 제목은 본문과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붙여놓으면 ‘풀꽃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소외되고 뒤떨어진 사람들이 좋아하는 마음, 긍정하는 마음, 위로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청난 폭발력을 일으킵니다. 내 자신이 봐도 놀랍습니다. 「풀꽃」 이란 시는 하찮은 시이지만, 이토록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은 독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인 : 시가 전문인을 위해서 쓰여지기보다는 대중적으로 쉽게 쓰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얘길 듣고 싶습니다.


나태주 : 당연한 얘기입니다. 시는 고급예술이지만 동시에 민중예술입니다. 민요가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시가 살아야 있어야 할 바탕은 대학교나 도서관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입니다. 시는 시집 속이 아니라 시집 밖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말에 “인구에 회자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에 오르내리는 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시가 있습니다. 유명한 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시인이 있습니다. 시대가 쓸모 있는 시인을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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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손님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시인

이기인 : 선생님을 초청하는 자리가 전국적으로 많습니다. 그 수많은 강연에서 선생님은 청중에게 어떤 말씀을 하는지요. 더 가까이 귀를 기울이고 동감하는 얘기는 무엇인가요. 특히 삶이 힘든 청년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지요.


나태주 : 말 할 수 있는 대로 이야기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나한테서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후회도 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의 반응을 자주 봅니다. 객석에서 어떤 말이 나오면 그 말을 이어갑니다.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로 강연이 흘러갑니다. 이런 방식의 강연을 좋아합니다. 학교 교육과정 중에 현장교육과정이 있습니다. 나는 현장강연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그 이야기를 합니다. 강연원고는 없습니다. 판서도 몇 글자 하지 않아서 특별한 교수도구도 없습니다.
진짜로 좋은 강연은 말로 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의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은 책으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마음과 영혼으로 공부했습니다. 책을 보면 영혼이 가로막힙니다. 그 영혼이 직접 몸을 통해서 나올 때 그것이 말씀입니다. 후일 제자들이 그 말씀을 적어서 책을 쓰고 한 것입니다. 책은 말씀의 보조기관입니다. 요즘 세상은 반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죽은 것은 진정한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가 그것을 대신했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청춘에게 말합니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시에도 쓴 적이 있습니다. 꽃에는 생식성장과 생육성장이 있습니다. 생식성장은 성적인 성장이고, 생육성장은 몸이 자라는 성장입니다. 생육성장은 영양상태가 좋을 때 꽃을 늦게 피웁니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땐 생육성장보다 생식성장을 빨리합니다. 그래서 옛날사람들은 빠르게 결혼하고 빨리 죽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삶은 길어지고 좋아졌습니다. 때문에 고달픈지도 모릅니다. 삶의 환경이 너무 좋아서 고달픕니다. 너무 과잉돼서 고달픕니다. 교육도 과잉된 측면이 있습니다. 취직이 힘들어서 대학원으로 도피한 경우가 있습니다. 도전해볼 수 있는데도 도피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너무도 과잉된 마음의 살을 빼야합니다.

 

이기인 : 시쓰기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시작법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신다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나태주 : 시쓰기에 왕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는 말처럼 시는 무식하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따지고 생각하고 망설이는 것보다 벌컥 써버리는 것도 좋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방식을 일러드립니다. 첫 번째 내지르듯이 써라. 두 번째 어린애가 말하듯이 써라. 세 번째 싸우듯이 써라. 네 번째 유언하듯이 써라. 마지막으로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써라. 내 속에서 응어리진 것을 몇 마디 말로 짧게 토해내라. 그것이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외로 한글을 막 깨친 할머니들의 시가 정말로 진솔하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이것밖에 없다”라는 생각으로 써보세요. 

 

이기인 : 선생님의 삶과 문학은 그동안 무엇을 지향했는지 궁금합니다.


나태주 :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동안은 그냥 멋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을 지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멋스러운 것이나 아름다운 것. 그것으론 부족합니다. 멋 그 자체를 해야 합니다. 그럴듯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것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가식적인 것을 지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길어지고 반짝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와 인생은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처절하고 담백하고. 단순하고 깔끔한 것입니다.


잔디밭에 있는 <풀꽃>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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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짧아야 합니다. “참회의 글을 한 줄로 줄이자(윤동주「참회록」)”는 말처럼 짧아야 합니다. 문학이 바라보는 것은 단순해야 합니다. 짧다는 것은 즉, 접근하기 쉬워야 합니다. 짧고 쉬운 만큼 또한 근본적이어야 합니다. 멋스럽고 그럴 듯한 것에서 멋 그자체가 나오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추억을 선물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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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인 : 삶에서 시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나태주 :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 그 이상은 없습니다. 그 감동은 동감에서 나옵니다. 앞서 동화라는 말을 썼는데, 이 말은 정말 위단한 말입니다.

 

이기인 : 선생님의 문학적 영감은 어디서 나오는지요. 좋아하거나 인상적이었던 책을 소개해 주시지요.
                     
나태주 : 시적 영감은 사람한테서 옵니다. 특히 아내에게서 다가옵니다. 나한테 오는 것이 아니라 너로부터 옵니다. 네가 예뻐서, 네가 안쓰러워 시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시는 다양한 곳에서 옵니다. 신앙을 떠나서 나는 다양한 종교서적들을 읽습니다. 책에는 문학적 감동이 많습니다. 또 고전을 즐깁니다. 특히 당시(唐詩)를 많이 읽습니다. 당시를 모르면 시인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감동적인 글을 즐깁니다. 『노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일본사람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 등등 많습니다. 좋은 책은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만듭니다. 그래서 좋은 책을 만나야 합니다.

 

이기인 : 선생님은 언제 시를 쓰시는지요. 시 쓰는 버릇 같은 것이 있는지요.


나태주 : 저는 아무 때나 씁니다. 특히 움직일 때 시를 씁니다. 버스 타고 가다가. 차를 타고 가다가 씁니다. 시 자체가 흐르기 때문에 좋습니다. 시는 앉아서는 쓰는 것이 아닙니다. 책상에서는 정리합니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삶 자체가 시입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사는 것, 때문에 움직이면서 시를 씁니다. 걸어가면서, 말하면서, 차를 타고가다 창밖을 보면서 씁니다. 고개 쳐 박고 쓰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고 씁니다. 초록색을 보면서 초록색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좋은 생각을 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시는 삶 자체입니다.
시 쓰기의 버릇으로 말한다면 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시를 잘 고치지 않습니다. 최초 그곳에서 왔기 때문에 시를 고친다는 생각은 당시의 나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그래서 퇴고를 잘 안합니다.

 

이기인 : 문화예술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있습니다. 또 일상이 바빠서 시를 읽고 감상할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요.


나태주 : 소외된 사람에게 문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소외를 불러옵니다. 소외된 이들에게도 문화는 있습니다. 문화인이라고 말하는 자칭 생산자, 지배자들 입장에서 그들의 문화가 없는 것이지. 그들의 문화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다만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 할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문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생산자들이 소외된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문화를 찾아내고 이해한 후에 자신들의 문화를 조금씩 알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빠르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일상이 바빠서 시를 만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삶 주변에 시가 정말로 많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문구, 노래가사, 더 좋은 건 그들 마음에도 시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기인 : 선생님과 교우했던 문인들 혹은 영향을 주셨던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나태주 : 나와 같이 글과 그림을 배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 말고도 저는 선배 복이 많았습니다. 그분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박목월, 박남수, 김남조, 황금찬, 김종길, 정한모, 전봉건, 박재삼, 박용래, 고은 등등 아주 많습니다. 시인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 화가, 음악가, 무용가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스님들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백담사 오현스님을 좋아합니다. 수녀님, 신부님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해인 수녀와 성 요한 신부가 그런 분들입니다.

 

이기인 : 모든 꽃은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조금 더 궁금한 꽃이 있는지요.


나태주 : 이곳 풀꽃문학관 주변에도 꽃은 많습니다. 저는 모든 꽃을 좋아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베려고 하면 풀 아닌 꽃이 없고 가꾸려고 하면 꽃 아닌 풀 없다” 즉 꽃도 풀이다. 가꾸려고 하면 전부 꽃입니다.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일화에서 말하듯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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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문학관의 아름다운 뒤뜰


이기인 : 과거 선생님이 쓰러지셨을 때, 병상에서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후의 삶은 덤이라는 표현도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의 삶은 어떤 삶인가요.

 

나태주 : 병상에 있을 때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생각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변한 건 제가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많이 주려고 합니다. 주는 일의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돈이 필요하되 그 돈은 나를 위한 돈이 아닙니다. 그 누구를 위한 것입니다. 돈이 많은 들어오지만 그 돈은 돌려쓰고, 나눠 쓰라고 그것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이기인 : 한국문화연수원은 공주의 문화예술 공간입니다.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시는지요.


나태주 : 자리가 아주 좋습니다. 공주지역에서 본다면 변하지 않는 사찰 마곡사 뒤에 위치한 것도 좋습니다. 한국문화연수원은 때 묻지 않은 순결한 자연에 있습니다. 앉아만 있어도 좋습니다. 특히 승효상의 건축물로 훌륭합니다. 교육과 시스템도 좋습니다. 단지 지금대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손님에게 <풀꽃>을 적어주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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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알려지길 원하질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이 할까 무섭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짜 좋은 곳은 남이 할까 무서운 공간입니다. 한국문화연수원은 그런 공간입니다. 예전에 그곳에서 「빈자리」라는 시를 썼습니다. 빈자리는 채울 수도 있는 공간입니다. 동시에 많이 가진 사람들이 비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물질이 아닌 영혼과 마음을. 빈 사람들이 찾아와서 물소리, 새소리를 채워가길 희망합니다. 한국문화연수원은 빈자리가 가장 좋은 곳입니다.


이기인 :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을 말씀해 주시지요.


나태주 :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어제와 오늘이 같고 오늘이 내일과 같도록. 즉 어제처럼 내일을 살고 싶어요. 그리고 날마다 욕 안 얻어먹고 밥 안 얻어먹고 살고 싶어요. 이 둘 중에서 보통 하나는 꼭 얻어먹잖아요.

 

어느덧 선생님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채우고 비워진 찻잔에는 시향이 앉았다. 다시 찻물을 우려내고 물소리를 따르는가 싶었는데. 목이 말랐는데. 문 밖의 어린 손님들이 찾아와서 선생님을 어서 “내놓으라고” 하는 으름장을 마룻바닥 위로 쿵쿵 굴렸다. 선생님은 어린 손님들을 더 아끼신다. 그래서 선생님의 귀한 말씀은 여기까지였다.
(이기인_한국문화연수원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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